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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에선 피해야 할 상대지만 무대 위의 빌런은 작품의 밀도를 높이는 중요한 축입니다. 공연 담당 김소연 기자가 매력적인 무대 위 대항자들을 새롭게 조명합니다.
뮤지컬 '위대한 개츠비' 영국 런던 웨스트엔드 공연. 오디컴퍼니 제공 ⓒJohan Persson
#. A는 출처가 불분명한 막대한 부를 쌓은 수수께끼 같은 남자다. 꿈은 단 하나. 가난 때문에 헤어져 지금은 다른 남자의 아내가 된 옛 연인을 되찾는 것이다. 그는 호화로운 저택에 살며 때때로 성대한 파티를 열어 부를 과시한다. 여자의 관심을 끌어 재회에 이르려는 절증권티커
박한 노력이다.
#. B는 A가 그리워하는 바로 그 여자다. 태어날 때부터 화려한 삶을 살았던 여자는 A가 아닌 부유한 남자와 결혼했지만 결혼 생활은 불행하기만 하다. B는 부자가 돼 돌아온 A와 위험한 관계를 맺고, 그를 위험에 빠뜨린 채 또다시 안정적 삶을 찾아 남편에게로 돌아간다.
#. C는 B의 남편이다. 사랑온라인파칭코
을 되찾으려는 A의 여정에 가장 방해가 되는 인물이다. 상속받은 재력을 당연시하는 C는 지위에 걸맞게 상류층 B와 결혼했다. C는 상류 사회의 도덕적 타락과 위선을 생생히 보여준다. 차별적 발언과 폭력적 행동을 일삼으며 끊임없이 불륜을 저지른다.
A, B, C 세 사람 중 누가 가장 심각한 빌런일까. 20세기 미국 문학을 대표하는 F 스콧인터넷백경
피츠제럴드(1896~1940)의 1925년 출간 소설 '위대한 개츠비'는 주요 세 캐릭터 제이 개츠비와 데이지 뷰캐넌, 톰 뷰캐넌 등 결함이 있는 인물로 가득하다. 1920년대 재즈 시대 미국의 물질주의와 도덕성 타락을 고발한 소설답게 이들 캐릭터는 모두 도덕적 모호성을 지녔다. 캐릭터의 복합성은 이 작품이 시대를 초월한 명작이 된 이유 중 하나다. 미국주식재야의고수
문학평론가 해럴드 블룸은 개츠비를 "판단의 영역을 기묘하게 넘어선 인물"로 규정하기도 했다.
오늘날과 꼭 닮은 1920년대 물질주의
영화 '위대한 개츠비'.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강세주식
'위대한 개츠비'는 미국 뉴욕 롱아일랜드의 신흥 부자 제이 개츠비의 거친 인생 여정을 그린다. 개츠비의 이웃이자 서부 출신인 닉 캐러웨이가 화자가 돼 개츠비와 주변 인물의 이야기를 전한다. 본명이 제임스 개츠인 제이 개츠비는 과거 데이지 페이와 사랑에 빠졌지만 신분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헤어졌다. 톰과 결혼한 데이지는 전통적 부자(Old Money)의 공간인 이스트 에그에 산다. 개츠비는 신흥 부유층(New Money)이 모인 웨스트 에그에 살며 맞은편 뷰캐넌 부부의 집 끝 부두의 초록 불빛을 밤마다 바라본다. 초록 불빛은 데이지와 연결되는 개츠비의 꿈, '아메리칸 드림'이다. 불륜을 비롯한 뷰캐넌 부부의 한심한 행태가 주변의 모든 것을 망치고 개츠비는 총에 맞아 죽는다. 캐러웨이는 개츠비의 비극적 죽음과 주변 인물들의 무책임한 반응을 목격한 후 동부 상류 사회의 삶과 가치관에 깊은 환멸을 느낀다.
소설 '위대한 개츠비' 초판본 표지.
이야기에서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빌런은 기득권층의 부패와 엘리트주의를 상징하는 톰이다. 백인 우월주의자이자 차별주의자인 톰은 여성을 욕구 충족과 지위 유지를 위한 수단으로 여긴다. 자신은 불륜을 저지르면서도 데이지가 개츠비에게 마음을 주는 것에 분노한다. 불륜 관계인 머틀 윌슨에게는 폭력을 행사한다. 머틀의 남편인 조지 윌슨이 개츠비에 대해 오해하게 해 개츠비를 죽게 한다. 피츠제럴드는 자신의 편집자였던 맥스웰 퍼킨스에게 보낸 편지에서 톰에 대해 "내가 이제껏 만들어낸 최고의 캐릭터"라고 적었다.
하지만 톰을 유일한 악역으로 보기에는 개츠비 역시 꿈과 이상을 위해 비도덕적 수단을 동원한다. 명문학교 출신 남성들의 격식 있는 호칭으로, '친구' 정도로 번역될 '올드 스포트(old sport)'를 남발하며 상류층 출신인 척 연기한다. 데이지는 물질주의에 길들여진 철없는 캐릭터로 보이지만 결정적 순간에 개츠비를 외면한다. 개츠비의 비극적 죽음에 원인을 제공한 것도 데이지다. 경제적 부를 일궜지만 도덕성을 잃은 시대. 피츠제럴드가 그린 미국의 1920년대는 누구도 완벽한 선인으로 남을 수 없는 시기였다. 그들을 궁지로 내몬 시대상이 최고의 빌런인 셈이다.
사회비판성 유지한 '개츠비' 변주 가능한가
로버트 레드포드 주연의 1974년 영화 '위대한 개츠비'. 한국일보 자료사진
"선견지명이 있는 오래 지속되는 고전."
글로벌 대안언론 컨버세이션은 '위대한 개츠비'의 출간 100주년(4월 10일)을 앞둔 지난 3월 말 '위대한 개츠비'에 대해 이렇게 규정했다. 매체는 "'위대한 개츠비'가 세대를 넘어 오랫동안 읽히는 것은 독자가 책을 다시 읽을 때마다 새로운 발견과 통찰, 그리고 새로운 강렬한 언어의 파편을 발견하기 때문"이라는 전미도서상 수상 작가 제스민 워드의 뉴욕타임스 기고도 함께 인용했다.
'위대한 개츠비'는 주인공 제이 개츠비의 사랑 이야기를 넘어 인간의 욕망, 과도한 물질주의와 사회적 불평등, 물질에 희생되고 왜곡되는 젊은이의 꿈 등 시대를 초월한 보편적 주제를 보여준다. 미국 사회를 바라보는 피츠제럴드의 통찰력은 한 세기가 흐른 오늘날까지도 유효하다. '위대한 개츠비'가 영화와 드라마, 뮤지컬 등으로 끊임없이 변주되는 이유다.
뮤지컬 '위대한 개츠비' 영국 런던 웨스트엔드 공연. 오디컴퍼니 제공 ⓒJohan Persson
다만 '위대한 개츠비'의 사회 비판적 성격은 다른 장르로 각색되는 데 역설적으로 방해 요소가 되기도 한다. '위대한 개츠비'라는 제목은 개츠비의 삶이 가진 허영과 비극, 그리고 순진함에 가까운 순수한 열정이 복합적으로 얽혀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남긴다. 따라서 오락적 성격이 강한 영화·뮤지컬 등으로 옮겼을 때 '철학적 요소를 간과했다'는 평론가들의 날카로운 시선을 피하기 어렵다. 대표적으로 배즈 루어먼이 감독하고 리어나도 디캐프리오가 주연한 2013년 영화 '위대한 개츠비'는 흥행에 성공했지만 평론가들의 혹평을 받았다. 개츠비의 파티 장면을 화려하게 표현하면서 캐릭터의 복잡하고 우울한 정서가 잘 드러나지 않은 탓이다.
신춘수 오디컴퍼니 대표가 제작을 총괄해 K뮤지컬의 새 역사를 쓰고 있는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 뮤지컬 '위대한 개츠비' 역시 이 부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신 대표는 소설 '위대한 개츠비'의 저작권 시효 만료(2021년) 시점에 맞춰 2020년부터 브로드웨이 창작진과 공연을 준비했다. 지난해 4월 개막 후 내년 1월분까지 티켓을 판매하고 있을 정도로 흥행 순항 중이지만 평단의 평가는 엇갈렸다.
뉴욕에서의 성공에 힘입어 지난달 개막한 영국 런던 웨스트엔드 공연 역시 일부 현지 매체의 평가가 박하다. 개막 전 프리뷰 공연이 전회 매진되는 등 관객 호응도는 높았지만 일간 가디언은 "아무리 많은 찰스턴 댄스(1920년대 재즈 기반의 춤)도 작품에 활기를 불어넣지 못한다"며 낮은 점수를 매겼다. 지독한 혹평이 오히려 관객의 호기심으로 이어지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8만 구독자를 보유한 영국 유명 유튜브 채널 '미키 조 시어터'는 이달 초 가디언의 '위대한 개츠비' 혹평 논란을 언급하며 자신의 평가를 담은 뮤지컬 '위대한 개츠비' 소개 영상을 올렸다.
신 대표는 '위대한 개츠비'를 뮤지컬로 옮긴 이유에 대해 "방향은 잘못됐을지언정 순수한 열정으로 무언가를 좇는 이상주의의 회복을 말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화려한 쇼뮤지컬 특성상 각 캐릭터의 복합성이 다소 무뎌진 감이 있지만 극도의 물질주의로 가치관이 무너진 소설 원작의 메시지는 뮤지컬 속에도 여전히 살아남아 있다.
'위대한 개츠비'는 미국, 영국 공연에 이어 한국 공연 개막을 8월(1일 프리뷰·8일 본 공연)로 확정하고 캐스팅을 발표했다. 개츠비는 2022년 토니상에서 뮤지컬 '컴퍼니'로 남우조연상을 받은 매트 도일이, 데이지는 뮤지컬 '알라딘' 북미 투어에서 자스민 역을 소화한 센젤 아마디가 맡는다. 한국 관객은 과연 이 공연에 어떤 반응을 보이고 어떤 메시지를 취하게 될까.
8월에 개막할 뮤지컬 '위대한 개츠비' 서울 프로덕션은 매트 도일(왼쪽)이 개츠비를, 센젤 아마디가 데이지를 맡을 예정이다. 오디컴퍼니 제공
김소연 기자 jollylif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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