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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시운 200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홈 Home’ ‘그래도, 아직은 봄밤’, 장편소설 ‘컴백홈’, 산문집 ‘당신이 모르는 이야기’가 있다. 창비장편소설상(2011년)을 수상했다.
커피 한잔 마시러 나가는 것조차 험난
강연장 가는 길 자체가 딱 맞는 강연 소재
10년 만에 타러 간 지하철을 시작으로
허락받지 않는 장애인 자유 위해 목소리
모주영씨를 처음 만난 것은 14년 전 경기도 부천에 있는 재활병원에서였다. 우리는 비슷한 시기에 당한 사고로 척수를오션파라다이스 게임
다쳐 하반신이 마비된 뒤 재활을 위해 입원해 있는 환자들이었다. 당시 그는 병원 내 화제의 중심에 있었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거의 매일 간병인들로부터 그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 들어야 했다. 대부분 하반신이 마비된 그를 정성껏 간병하는 남자친구에 관한 얘기였다. 보기 드문 순애보가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으니 자연히 관심이 가는 모양이었다. 그런 이유로 주온라인배경
영씨를 눈여겨보게 되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그가 정말로 좋아졌다. 그의 웃음 때문이었다. 아무 거리낌 없이 온 얼굴로 함빡 웃는 그는 마치 천진한 아이 같았다. 그토록 지극한 사랑을 받는 게 당연하다 여겨질 만큼 그에게는 사람을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었다. 오랜만에 연락해 인터뷰를 요청했을 때, 그는 왜 자기처럼 평범한 사람 얘길 하려는 거냐며황금성
난감해했다. 아무래도 그는 자신이 얼마나 특별한 사람인지 잘 모르고 있는 것 같았다.
주영씨는 한국장애인고용공단에서 양성된 ‘직장 내 장애인 인식 개선 강사’로서 공단과 연계된 센터 소속으로 활동하고 있다. 직장 내 장애인 인식 개선 강사는 장애인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확산시키고, 차별 없는 직장 문화를 조성하기 위해 교육을 기획하고 진황금성포커
행하는 활동을 한다. 주로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하지만 간혹 학생들을 대상으로 강연도 한다. 당연히, 강사 자격을 얻는 데 장애 유무는 아무 상관이 없다. 주영씨는 이 자격증을 가볍게 할 수 있는 부업거리 정도로 여기는 강사를 가끔 본다면서, 그럴 때마다 속이 무척 상한다고 했다. 모두가 그럴 수는 없겠지만 가능하면 많은 강사가 사명감을 가지고 이 일에 임해마이크로랏
주면 좋겠다는 그의 바람에서 그가 이 일에 얼마나 큰 자긍심을 가졌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주영씨는 장애를 가진 사람이 강단에 서는 것 자체로 강렬한 인상을 받는 것 같다고 말했다.
“장애 당사자로서 확실히 이점이 있어요. 여러분 앞에 서기 위해 오늘은 이러이러한 과정들을 거쳐야 했노라고, 집에서 강연장까지 이동하면서 겪었던 일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으로 강연을 시작할 때가 많은데, 아이스브레이킹으로 그만한 소재가 없거든요. 아시다시피, 우리가 이동하다 보면 비장애인들은 생각지도 못했던 상황에 직면할 때가 많잖아요? 어이없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하고, 때로는 너무 위험한 일들이요. 비장애인들은 장애인들이 그저 전동휠체어나 슬슬 굴리며 편하게 이동한다고 생각하겠지만, 사실 그 과정 자체만으로 장애 인식 개선 강연을 위한 소재가 되고도 남을 만큼 현실은 엉망진창이잖아요.”
그의 말에 우리는 마주 보며 웃음을 터뜨렸다. 안 그래도 그 엉망진창인 현실을 통과해 만난 우리였기 때문이다. 다른 지역의 강연장은 고사하고 집 근처에서 커피 한잔만 마시러 가려 해도 수많은 턱을 ‘뛰어넘어야’ 한다. 그마저도 집 근처에 휠체어 진입이 가능한 커피숍이 존재한다는 낮은 확률의 전제 조건이 충족되어야 가능한 일이지만 말이다. ‘한발 더 나아가’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실질적인 위험에 더해 더딘 승하차로 시간이 지체될 때마다 쏟아지는 승객들의 불편한 시선까지 견뎌야 한다. 다짜고짜 다가와 ‘하필이면 바쁜 시간에 나와서 돌아다닌다’ 하는 타박은 애교로 느껴질 정도로 시선의 압박을 견디기란 만만치가 않다.
“처음 이 일을 시작한 계기는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어서였어요. 나도 뭔가 쓸모 있는 일을 해서 세상에 기여하는 사람이고 싶었다고 해야 할까요? 그전부터 해오던 장애인 재택근무 일이 무의미하게 느껴졌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어요. 사실, 병원에서 퇴원한 후 10년 가까이 집 안에 저를 가두고 있었어요. 병원에서 재활을 받을 땐 퇴원만 하면 활기차게 살아갈 수 있을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막상 퇴원해서 집으로 오고 나니까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았어요. 할 수 있는 일을 적극적으로 찾아볼 생각은 하지 못한 채 두려움에만 매몰되어 있었죠.”
모주영씨는 수년째 유니버설 패션 브랜드의 앰배서더로 활약하고 있다. 모주영 제공
짐작과는 다른 주영씨의 말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그랬듯 그도 오랜 세월 집 밖으로 나오지 못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어느 날엔가는 도저히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즈음 함께 병원 생활을 했던 친구가 자신이 속한 커뮤니티에 초대해줬어요. 저처럼 장애를 가졌지만 적극적으로 사회생활을 해나가고 있는 이들이 주축이 돼 운영되는 모임이었죠.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던 정보도 얻게 되었고 이런저런 생각이 많아졌어요. 그리고 그들이 하고 있다면 나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싹트기 시작했죠. 그들과 만나기로 약속된 날, 큰맘 먹고 혼자 집을 나서서 지하철을 탔어요. 절대로 못 할 줄 알았는데, 지금 포기하면 평생 숨어 지내야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까 되더라고요. 딱 10년 만이었어요.”
지난해 가을, 나 역시 13년 만에 처음으로 혼자서 지하철을 타는 모험을 감행했다. 그래서인지 그가 하는 말이 남의 일 같지 않았다. 그는 10년 만에 탄 지하철 안에서 엄청나게 감격했다고 했다. 나 역시 그랬다. 겨우 네 정거장뿐인 짧은 거리였지만 죽었던 몸에 다시 피가 도는 것만 같은 강렬한 감각에서 한동안 놓여날 수가 없었다.
“그게 모든 일의 시작이었어요. 혼자서 지하철을 탈 수 있게 되고 나니 여러 도전이 가능해졌거든요. 누군가의 도움 없이, 온전히 내 힘으로 어딘가로 이동할 수 있는 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그때 처음 알았어요.”
자연히, 우리는 장애인 이동권 투쟁에 대해 의견을 나누게 되었다. 장애인의 이동권을 협상의 대상이라 여기는 인식과 묵묵히 불편을 감수하는 것으로 이동권 투쟁에 힘을 실어주는 마음들에 대해서, 그리고 투쟁의 최전선에서 자신을 내던지고 있는 이들에게 진 마음의 빚에 관해서도 이야기했다.
주영씨는 인생에 많은 변화를 가져다준 강사 일 자체는 만족스러웠지만, 그것만으로는 생계를 해결할 수 없었다고 했다. “우선, 강연의 기회가 충분하지 않아요. 아무리 이동이 자유로워졌다고 해도 비장애인들에 비해서는 한계가 있는 게 사실이니까요. 몸의 컨디션에 따라 강연을 나가는 게 불가능할 때도 적지 않다 보니 일정을 맞추는 게 어려운 탓도 있고요. 아마, 많은 장애인 강사의 사정이 저와 비슷할 거예요. 여타 강연들과 비교해 강사료가 딱히 적달 순 없지만, 강연 횟수를 고려하면 생계를 온전히 맡길 만한 일은 못 됐죠.”
그래서 그는 흔히 말하는 ‘엔(n)잡러’가 되었다. 한가지 일을 해내고 나니 어떤 도전이든 실행할 용기가 생긴데다, 좋은 사람들을 자꾸 만나다 보니 고마운 기회가 따라오기도 했다고. 주영씨는 수년째 한 유니버설 패션 브랜드의 앰배서더로 활약하고 있다. 장애인 모델로서 옷을 입고 광고나 화보 촬영도 하면서 불편한 점이나 개선 방향을 광고주에게 제시하는 것은 물론, 제작자들에게 새로운 영감을 불어넣어준다. 장애 인식 개선과 실질적인 해결책 모색을 위해 장애 관련 유튜브 채널에서 활약하고 있으며, 여성가족부에서 주관하는 사진전에 참여하는 등 장애인 모델로서 여러 기획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주영씨는 장애인 재택근무 경험을 바탕으로 일반 기업에 입사가 확정되어 이달 입사한다. 그는 자신이 하는 모든 활동을 통해 말하거나 이루고 싶은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단 한마디로 대답했다.
“자유요.”
주영씨는 ‘허락받지 않아도 되는 삶’에 대해 이야기했다. 누군가 만나거나 어딜 방문하기 위해 부모님이나 동생, 남편(과거 화제의 중심이었던 그 남자친구)에게 무언가 설명하고 부탁해야 했던 10여년 동안 느낀 좌절감이 그의 자존감을 어디까지 추락시켰는지, 아무도 눈치 주지 않았지만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던 삶이 그를 얼마나 쪼그라들게 했는지가 그 시작이었다. 나는 시종일관 고개를 끄덕이거나 한숨을 내쉬며 그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지금 제가 하는 일들은 궁극적으로 장애인들이 허락받지 않아도 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생각, 그 한가지로 통해요. 그걸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뭐든 최선을 다할 거예요. 물론 제 개인적인 행복도 중요해요. 지금 제 삶이 남편과 함께하는 것이니만큼 남편이 그러듯 저 역시 가정에 헌신하는 건 기본이겠죠.”
그러면서 그는 얼마 전, 택시 기사와 벌인 실랑이에 대해 털어놓았다. 남편이 배웅하는 모습을 보고 그가 비장애인과 결혼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기사가 ‘남편이 고생 많겠다’며 세상에 그런 사람 흔치 않으니 ‘남편에게 무조건 잘하라’는 훈계를 늘어놓았다. 그는 장애인과 비장애인 커플에 대한 사회의 낡은 고정관념이 불편할 때가 많다고 했다. “장애를 가졌기 때문에 제가 가정 내에서 하지 못하는 일은 천장에 달린 전등 갈기뿐이에요. 아, 하나 더 있다. 싱크대 상부 장에 있는 그릇 꺼내기. 하지만 그걸 빼고는 저도 다 할 수 있고, 실제로 다 해내며 살아왔어요. 제 남편은 정말 좋은 사람이지만 날개 없는 천사는 아니거든요.”
마지막 말을 하면서는 살짝 헛웃음을 흘리기도 했다. 나는 몹시 미안해졌다. 주영씨가 얼마나 야무진 사람인지 잘 알고 있는데다 그와 같은 장애인이기도 한 나조차도 그가 말하는 낡은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이다. 주영씨와 헤어져 집으로 돌아오는 길엔 추적추적 비가 내렸다. 나는 운전하는 엄마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장애인이 된 지 14년이나 되었지만, 여전히 독립하지 못하고 있는 나 때문에 고생이 많은 엄마에게 새삼 미안해졌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무엇이 나를 자유롭게 할 수 있는지 미처 생각하지 못하고 살아온 시간을 돌아보게 되었다. 나는 지금 충분히 자유로운지, 허락받지 않아도 되는 삶을 살기 위해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고민하며 비에 젖어 반들반들 빛나는 아스팔트를 오래 바라보았다.
*일하는 사람의 초상: 우리는 일을 해서 돈을 벌고, 타인과 관계를 맺으며, 보람도 얻습니다. 지금 한국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다양한 일 이야기를 ‘월급사실주의’ 동인 소설가들이 만나 듣고 글로 전합니다.
황시운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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