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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오지 산골 마을에서 다큐멘터리 사진 찍는 게 꿈이야."
그때 아버지 나이 62세. 산 사진을 취미로 삼으셨지만, 아빠의 '꿈'이라는 단어를 그때 처음 들었다. 가슴이 철렁했다. 내가 단 한 번도 아빠의 꿈을 물어본 적이 없었다는 사실에.
"그래? 아빠, 그럼 우리 같이 해외 트레킹 갈래? 내가 열심히 돈 벌어서 은퇴여승부주
행 보내 드릴게!"
호기롭게 약속했다. 3년 안에 은퇴하면, 함께 여행을 가기로. 그런데 2년이 지나고, 5년이 다 되어 가도록 아빠는 여행도 은퇴도 미루기만 했다. 더 이상은 안 되겠다는 생각에, 결국 독한 말을 뱉고 말았다.
"아빠 그냥 계속 일해! 여행은 평생 미루고. 나중에 무릎 아파서 후회해도 난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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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번엔 아빠가 말했다.
"아빠는 네팔에 가고 싶어. 히말라야 설산을 사진으로 담으면 엄청난 작품이 탄생할 것 같은데!"
그렇게, 네팔행 비행기 티켓 두 장을 끊었다. 3주간의 효도 여행. 물론 딸인 내가 전일 가이드로 수행하는 건 덤이제일제강 주식
었다!
스케일이 다른 EBC, 히말라야의 품에 안기다
히말라야에는 다양한 트레킹 코스가 있지만, 우리가 선택한 건 EBCEverest Base Camp 코스다. 아빠에겐 처음이자 마지막일 수도 있는 히말라야라면, 이왕이면 제대로 가야 하지 않겠는가! EBC는 히말라야 3대 클래식 루트로 불리는 트레킹 ABCAnnapurn주식투자상담
a Base Camp 코스나 랑탕 벨리 코스보다 고도도 높고 일정도 길어 걱정이 있었지만, 전체 12일 여정으로 천천히 적응한다면 꾸준히 운동해 온 아빠이기에 충분히 해내실 수 있을 거라 믿었다. 또 포터를 고용해 15kg 카고백 짐을 따로 맡겨서 최대한 아빠의 체력을 아꼈다. 내겐 네 번째 히말라야지만, 쿰부 지역은 처음이라 또 아빠와 이렇게 3주라는 긴자원개발주
여정을 함께하는 것은 처음이라 설?다.
히말라야의 시작점인 루클라는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공항이 있는 마을이다. 활주로는 500m 남짓, 그것도 산을 깎아 만든 경사형 활주로다. 활주로 너머 펼쳐진 설산들이 시작부터 압도적이다. 28세 포터 '발라람'을 만나 본격적인 트레킹이 시작됐다.
히말라야 최대 고산마을 남체바자르와 콩데 봉의 모습.
이 여정의 첫날밤은 두드코시강의 맑은 물소리와 흔들다리가 인상적인 팍딩(2,610m). 이튿날은 몬조(2,835m)로 향했다. 셰르파 가옥과 마니석이 가득한 몬조는 에베레스트국립공원의 입구이자 관문이다. 입산 허가증을 이곳에서 받기 때문이다. 몬조에서 정식적인 입산 허가를 받은 이후부터는 본격적인 오르막이 시작되었다. 다음 도시인 남체 바자르까지 이어지는 길은 가파르기로 악명 높았다. 반나절을 꼬박 걸어 어두워질 무렵에야 마을에 도착했다. 그러나 오히려 좋았다. 빠름을 미덕으로 여기는 사회 속에서 쫓기는 것에 익숙해진 부녀에게, 느린 걸음은 오랜만의 위안과 여유를 선사했다.
남체바자르(3,440m)부터 색다른 히말라야처럼 느껴졌다. 이곳은 과거 네팔-티베트 간의 무역 거점이었고, 지금은 히말라야 최대의 고산 마을이다. 이 높은 고도에 시장, 카페, 베이커리, 등산용품점까지 없는 게 없다는 사실도 놀라웠지만, 마을 뒤로 수호신처럼 자리잡은 콩데 봉우리의 풍경이 인상적이었다. 이곳에서 우리는 이틀간 머물며 고산 적응을 했다. 고산에 적응하는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는 더 높은 곳에 올랐다가 내려오는 것이다. 그래서 당일 하이킹으로 에베레스트 전망 호텔에 올라 커피 한잔의 여유를 즐기기도 하고, 남체바자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포인트에서 일출 일몰을 감상하기도 했다. 평소라면 누리지 못했을 여유를 아빠와 함께하니 더욱 좋았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손도 발도 얼굴도 땡땡 부어올랐다.
남체를 넘어서면, 히말라야가 본색을 드러낸다. 탐세르쿠, 강테가, 아마다블람, 타보체, 로체, 눕체… 6,000m급 봉우리들이 줄줄이 나타나며 차원이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각도에 따라 다른 얼굴을 가진 이 거봉들을 보는 재미에, 하루 종일 지루할 틈이 없다. 아빠의 카메라 셔터는 바빠졌고, 나 역시 풍경에 넋을 놓은 채 그림을 그렸다. 대화는 적었지만, 앞서거니 뒤서거니 각자의 리듬을 즐기며 발걸음을 옮겼다.
에베레스트 첨봉보다 아찔한, 위기의 부녀
남체에서부터 고산증세로 경미한 두통이 시작된 나와 달리 아빠는 컨디션이 꽤 괜찮아 보였다. 그러나 해발 3,500m가 넘어가면서 부터는 내색을 안 하셨지만 아빠의 컨디션도 좋지 않음을 느낄 수 있었다. 작은 오르막이나 계단을 올라갈 때도 거친 숨을 내뱉었고, 최애 음식인 '치킨 프라이드 라이스'를 맛있게 잡수시던 아버지가 매콤한 라면을 찾기 시작했다.
딩보체 마을 위쪽에 멋진 뷰포인트를 자랑하는 낭가르창 봉우리를 오르는 길, 아마다블람을 배경으로 한컷
고도가 높아질수록 온도만 낮아지는 것이 아니라, 부녀 사이에도 찬바람이 불었다. 누적된 피로감과 고산증세로 인한 예민함 때문일까. 예산을 아끼겠다고 한 방을 이용하며 계속 붙어 있던 것이 문제였을까. 어느 날 하찮은 말다툼이 싸움으로 번졌다. 나는 한참 나이 어린 딸이지만 이 여정의 대장으로서 나를 따라주길 바랐고, 아빠는 그런 딸이 답답했던 모양이다. 갈등이 반복되자 마음의 앙금은 쌓여갔고 점점 서로를 미워하는 눈빛이 깊어졌다.
그러던 중, 탱보체에서 새벽 일출 감상을 마치고 돌아온 숙소. 갑작스런 흔들림이 방을 10초 동안이나 휘청이게 했다. 지진이었다. 아빠는 내가 침대를 흔드는 줄 알고 "하지 마!"라고 할 정도로 우리는 지진에 대한 감각이 없었다. 나는 얼른 뛰어나가자고 했고, 아빠는 문을 잠그겠다고 방 키를 찾았다. 이곳에서부터 100km 거리도 안 되는 티베트발 7.2의 대지진에도, 우리 부녀는 싸우고 있었다. 에베레스트 인근에 큰 피해는 없어 다행이었지만, 그 사건 이후 부녀의 분위기는 점점 더 냉랭해졌다.
히말라야에서 가장 우아하고 아름다운 봉우리로 불리는, 어머니의 품과 같은 아마다블람Ama Dablam.
딩보체에서는 아빠가 저녁시간에 길을 잃는가 하면, 고락셉으로 향하는 길에선 급기야 "나는 네 아빠 안 할란다", "그럼 이 돈 가져가, 나는 내려갈 테니까"까지. 그 상황에서 가장 고생한 사람은 아마 아빠도 나도 아닌 포터 발라람이었을 거다. 발라람은 우리를 번갈아 다독이며 중재자 역할을 했다. 발라람 덕분에 우리는 억지로라도 화해했고, 부끄럽고 고마운 마음에 사과의 말과 함께 두둑한 팁을 건넸다. 처음에 어색해 했던 아빠는 그를 아들처럼, 나는 때때로 '보스'라 부르며 의지하게 되었다.
5,545m 칼라파타르, 붉게 물든 세 봉우리를 마주하다
탱보체와 딩보체를 지나 고락셉에 다다를수록, 풍경은 점점 더 크고, 가까이, 그리고 무시무시하게 다가왔다. 아마다블람(6,812m)의 우아한 곡선, 로체(8,516m)의 거대한 절벽, 눕체(7,861m)의 삐죽한 능선, 그리고 푸모리(7,161m)의 피라미드형 실루엣까지- 고산의 장관이 시야를 가득 채웠다. 이쯤 되면 풍경이 감정이고, 숨이 짧아지는 건 고도 때문만은 아니었다.
칼라파타르에서 왼쪽부터 눕체, 에베레스트, 로체 세 봉우리가 붉게 타오르는 모습을 마주했다.
EBC 트레킹 루트에서 가장 높은 곳에 숙소가 있는 마을, 고락셉(5,164m)에 도달했다. 짐을 잠시 내려놓고, 이 여정의 하이라이트인 칼라파타르로 향했다. 칼라파타르는 베이스캠프보다도 높은 해발 5,545m 지점에 있는 에베레스트를 가장 잘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다. 여정의 하이라이트로 향하는 시점, 내 상태는 최악이었다. 물만 마셔도 속이 울렁이고, 숨은 턱 끝까지 차올랐다. 예상치 못한 복병은 68세 아빠가 아니라 나였다. '젊음'이라는 무기를 방치해 둔 결과, 히말라야가 내게 정중하지만 싸늘한 경고를 보내는 중이었다.
세 걸음 걷고 멈춰서 한참 숨을 고르고, 다시 세 걸음. 포기하고 싶은 순간, 호흡을 바꿨다. 7초 동안 길게 내쉬고, 빠르고 깊게 들이쉬고. 아주 단순한 리듬이지만, 어디선가 그 호흡이 도움된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그리고 그것만이 살 길이었다. 그렇게 가다 보니 어느새 앞서 걷던 아빠를 따라 잡았고, 아빠의 걸음 속도는 점점 느려졌다. 둘 다 아무 말 없이 서로를 기다리고 또 걷기를 반복했다.
네팔 히말라야 지역에서 즐기는 전통 발효주 통바를 마시고 있는 아빠와 나.
그렇게 도착한 해질녘의 칼라파타르. 붉은 햇살이 수채화 물들이듯 산마루에 스며들고, 서서히 그 장관이 눈앞에 펼쳐졌다. 중앙에는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8,848m), 왼편에 눕체, 오른편에는 세계 4위의 로체. '히말라야 3대장'이 불타오르는 듯 거대한 불덩이처럼 빛났다.
전망대 정상까지는 고작 100m 남짓. 하지만 우리는 그곳까지 가지 않았다. 지금 이 자리가 바로 정상이었다. 순간을 지나치지 않기 위해, 우리는 그 자리에서 멈췄다. 손발이 얼어붙고, 해는 순식간에 넘어갔지만, 우리는 세계의 지붕이 붉게 물드는 모습을 한참동안 바라봤다.
칼라파타르에서 내려온 뒤, 고락셉의 로지에서 라면 두 그릇을 주문했다. 달걀 넣은 라면 한 그릇이 무려 1만6,000원. 강남 물가도 울고 갈 가격이었지만, 그 붉은 에베레스트를 가슴에 품고 먹는 매콤한 국물 한 입은 그 어떤 미슐랭 요리보다 근사했다. 세상에서 가장 비싸고,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라면이었다.
히말라야에서 한 가족이 된 포터 발라람과 못말리는 부녀
"아빠, 이제는 아빠가 하고 싶은 걸 해"
카트만두에 돌아와 얼큰한 김치찌개에 소주 한 잔. 진짜 여정은 그제야 끝이 났다. 싸운 것도, 울컥한 것도, 다 녹아내리듯 사라졌다. 나는 아빠에게 말했다.
"아빠, 이제는 아빠가 하고 싶은 걸 해!"
그러자 아빠는 씨익 웃으며 되물었다.
"그럼, 다음 여행은 언제 갈까?"
나는 장난스럽게 되받아쳤다.
"다음은 없어. 이건 1회 한정 스페셜이었거든!"
하지만 속으로는 알았다. 이 히말라야 여행은 끝이 아니라, 우리 둘 다에게 새로운 시작이라는 것을!
월간산 5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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